▲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때의 한 장면. ©브레이크뉴스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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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국가기관이 작성한 비밀문건들을 비밀 연한 해제 기간에 따라 공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정보공개에 미치진 못하지만, 조금씩 과거 사건의 비밀을 해제, 공개하고 있다. 그 가운데 1980년 5.18 관련 자료가 곧 공개된다. 군사 쿠데타 세력의 대(對) 국민을 향해 행한 처참한 만행(蠻行)의 일부가 적나라하게 공개되는 것이다. 1980년 5.18 광주학살은 12.12 군사 쿠데군이 저지른 잔인한 진압작전이었다. 국민을 지키라고 준 총칼로 국민을 학살한 가슴 아픈 사건이었다.
이때, 참상기록의 공개는 계엄군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됐다. 이로인해 국내 언론에는 자세하게 보도되지 못했다. 간헐적으로 외국인 기자들이 촬영한 기록물들을 통해 그때의 참상이 어떠했는지를 볼 수 있었다.
당시 광주학살의 현장에 있었던 가톨릭 김성용 신부의 증언은 당시의 참상실상을 알 수 있는 좋은 글이다. 김 신부가 기록했던 1980년 5월19일, 공수특전대의 살상 만행을 읽는 이들에게 치를 떨리게 한다.
김 신부는 이 글에서 “<5월19일>오후 1시 30분 시외버스공용터미널 앞에 있는 북동에 가기 위해서 택시를 잡았다. 거리의 사람들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이미 어제 낮(12시경)에 공수부대가 시내에 투입되어 가공할 살상이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철제의 곤봉으로 머리를 내리치고 선혈을 흘리며 넘어진 사람을 군화발로 차고 밟았다는 것이다. 여학생, 남학생의 차별 없이 옷을 벗기고, 구타하고 발로 차고, 총검으로 마구 찔렀다 한다. 담을 넘어서 민가에 도망가는 젊은이를 쫓아가서 그러한 만행을 자행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젊은이들을 이유 없이 포승지어서 연행했다”면서 “아, 이것이 대한의 자랑스런 국군인가? 나는 귀를 의심했다. 오후 4시경 가톨릭센터로부터 검은 연기가 하늘 높이 올랐다. 분노한 사람들이 차에 불을 지른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김 신부는 “M16 소총이 내 손에 있었더라면, 나는 전원을 사살했을 것이다. 전율할 충동을 느꼈다”고 기록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김 신부는 “국민의 피땀이 묻은 방위세로 무장한 군대, 외적의 침략을 막으라고 주어진 총검을 이 나라의 주인인 시민들에게 돌리다니.... 이런 군대는 필요없다. 주인을 모르고 미쳐 날뛰는 군대는 없어져야 한다. 그러나 누가 이 군인들을 미치게 했는가? 국민을 살상하라고 명령한 원흉은 누구인가?”고 따졌다.
국민들이 이제 가감없는 광주민주화 운동에 대한 참상을 담은 기록물들을 볼 수 있게 됐다. 왜냐? 5.18특별법 개정안이 국회의 본회의에서 통과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대안신당의 박지원 의원은 10월31일 열린 이 당의 제14차 의원총회 모두발언에서 “오늘 5.18특별법 개정안이 국회의 본회의에서 통과된다. 이미 밝힌 바 있지만 51.8 당시 보안사에서 제작한 사진첩 13권에 대해서 국방부에서 공개를 곧 하기로 약속했다. 이제 다시 확인한 바에 의하면 5.18 당시 사진첩 13권 이외에 당시 보안사에서 제작한 비디오테이프, 마이크로필름, 관계서류도 함께 안보 지원사(구 기무사)에서 국가기록원에 넘겼다고 확인됐다”면서 “따라서 다시 한 번 사진첩 13권, 비디오테이프, 마이크로필름, 관계서류의 공개를 요구하며 국방부는 즉각 공개해 5.18 진상규명을 앞당겨줄 것을 촉구한다. 만약 이러한 자료들이 공개되고 당시 보안사에서 제작된 비디오 테이프이 공개된다고 하면 그 참상을 여실히 다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과거의 참상이 왜곡되지 않고 그대로 담긴, 5.18 기록물들이 사건 후 39년 만에 언론을 통해 자세하게 보도되는 순간, 이를 보는 이들은 경악할 것이다. 교훈은, 그러한 잔인한 사건이 이 땅에서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데 있다. 눈물을 흘리더라도, 과거의 처참한 사건을 잊지는 말아야 한다. moonilsuk@naver.com
*필자/문일석. 시인.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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